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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밤이 5월의 새벽에게 묻다

5월의 침묵이 12월의 소란에게 답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고.
12월의 밤이 5월의 새벽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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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3. 생일 밤의 현장 (직접 촬영)

2025년 12월 3일, 내 생일이었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늦은 조깅 중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계엄령. 믿기지 않는 뉴스 속보를 보며 무작정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미친 짓은 아닐까 하는 망설임보다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밤, 국회 앞의 혼란 속에서 내게 남은 건 하나의 질문이었다.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과거의 상처는 왜 아물지 않고 불쑥 튀어나오는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5월 17일, 나는 광주로 향하는 차 안에 있었다. 아내의 일정에 동행하는 길이었지만, 내심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4시간. 핸들을 잡고 달리는 동안 나는 줄곧 12월의 그 밤을 생각했다. 그날의 공포와 분노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정을 넘겨 도착한 망월 묘역은 적막했다. 추모제는 이미 끝났고, 불 꺼진 묘역엔 북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밤, 국회 앞이 소란스러운 혼돈이었다면, 이곳은 무거울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석들의 이름을 더듬어 보았다. 달빛조차 흐릿해 글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이 품은 무게만큼은 선명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묘역의 흙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12월의 우리가 느꼈던 불안의 뿌리가, 어쩌면 아직 위로받지 못한 이 땅 깊은 곳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밤중 깜깜한 망월 묘역

이튿날 5월 18일, 날이 밝은 광주의 거리에서 나는 그 실체를 보았다. 전일빌딩 245의 벽에 박힌 총탄 자국들. 과거의 흔적이었지만, 마치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 증언처럼만 느껴졌다. 금남로에 걸린 "지켰다 민주주의"라는 현수막을 보니 나는 12월의 국회 앞이 떠올랐다. 우리가 지키려 했던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서 피로 지켜낸 약속이었구나...

5.18에 가본 광주에서 마주친 전일빌딩 245.

서울로 돌아가려던 참에 아내의 말이 발길을 돌려세웠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1묘역이 있어. 거기에 더 외로운 분들이 계셔."

나는 다시 묘역으로 향했다. 더 깊고, 더 조용한 곳. 이름 없는 비석들이 놓인 자리. 5월의 비극 속에서도 소외된 이들이 잠든 그곳은 12월의 그 밤,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두려움과 닮아 있었다.

안동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 풍경은 평온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소외된 곳에 묻힌 진실을 끊임없이 호출하는 것. 그것이 반복되는 역사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임을 되새기며 2025년 5월 18일의 기록을 여기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