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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81년생의 초상

1981년생은 아날로그의 황혼과 디지털의 여명 사이에서 태어나, IMF와 헬조선을 지나, 여전히 전환기의 문턱을 걷는 세대다. 세계사의 변곡점마다 맞닥뜨린 충격 속에서, 의미와 균형을 찾아 실험하는 이들의 자화상. 그리고 나는 그 교차점에서, 새로운 회로를 다시 짜는 한 81년생의 초상을 그린다.
어느 한 81년생의 초상

1. 1981년이라는 문

1981년. 이 숫자는 하나의 문턱이다. 아날로그의 황혼과 디지털의 여명이 교차하는 지점, 냉전의 종막과 세계화의 서막이 겹치는 순간, 산업화 세대의 자녀이자 Z세대의 부모가 되는 기묘한 좌표. 우리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만 스포티파이로 늙어간다. 386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배웠지만 AI와 대화하며 일한다.

나는 세계 속의 81년생이자, 한국 속의 81년생이자, 나 자신으로서의 81년생이다. 이 세 개의 원이 겹치는 교집합에서, 그리고 그 원들이 만들어내는 빈 공간에서, 한 세대의 초상이 그려진다.

2. 세계의 81년생

전환기의 증인들

1981년생들은 역사의 경첩 위에 서 있다. 우리가 열 살이 되던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스무 살이 되던 2001년, 9/11이 일어났다. 서른이 되기 전인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졌다. 마흔이 되던 2021년, 팬데믹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매 십년마다 세계사의 변곡점을 통과했다.

이 세대는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리터러시를 동시에 보유한 마지막 세대다. 손편지를 쓸 줄 알면서 이메일을 보낼 줄 안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책의 무게를 알면서 킨들의 편리함도 안다. 이 이중성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우리는 번역자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붕괴된 약속들

밀레니얼 세대의 선배 그룹으로서, 81년생들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약속이 깨지는 것을 목격한 첫 세대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중산층 티켓이 아니게 된 순간, 평생직장이 신화가 된 순간, 집 한 채가 평생 빚이 된 순간을 우리는 20대에 목격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게 살기 시작했다. 소유보다 경험을, 안정보다 의미를, 출세보다 균형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 창업가,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삶의 실험가들. 81년생들은 "Plan B"를 항상 준비하는 세대가 되었다.

현재 그리고 미래

2025년 현재, 세계의 81년생들은 44세다. 정치적으로는 마크롱(1977년생)보다 젊고, 경제적으로는 저커버그(1984년생)보다 늙었다. 우리는 지금 사회의 중간 관리자, 중견 기업가, 숙련된 전문가의 자리에 있다. 아직 최고 권력자는 아니지만, 실무를 돌리는 핵심 톱니바퀴다.

10년 후 54세가 되면, 우리는 각 분야의 의사결정권자가 될 것이다. 20년 후 64세가 되면, 은퇴를 앞둔 원로가 아니라 여전히 활동하는 시니어 리더가 될 것이다. 100세 시대에 64세는 새로운 중년이니까.

3. 한국의 81년생

IMF 키즈

한국의 81년생에게 1997년은 잊을 수 없는 상처다. 고등학교 2학년, 17살의 나이에 목격한 아버지들의 몰락.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대기업에서 쫓겨나는 아버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내몰리는 이웃 아저씨들, 금 모으기 운동에 결혼반지를 빼는 어머니. 우리는 그때 배웠다. 안정이란 없다는 것을.

대학에 들어간 2000년, 우리는 386세대가 만든 학생운동의 마지막 자락을 목격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벤처 붐, 인터넷, 그리고 세계화. 우리는 운동권이 아니라 벤처 동아리를 만들었고, 대자보 대신 블로그를 썼으며, 혁명 대신 창업을 꿈꿨다.

헬조선의 첫 세대

2000년대 중반, 우리가 사회에 진출할 때 한국은 이미 '헬조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88만원 세대론이 나왔고, 삼포 세대가 되었다가 오포 세대가 되었다. 우리 세대부터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이 일상이 되었고, 스펙 경쟁이 극에 달했으며,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한류를 만든 세대이기도 하다. 싸이월드에서 디지털 문화를 실험했고, 홍대 인디씬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으며, 강남역과 이태원에서 글로벌 문화를 체험했다. 우리는 좌절하면서도 창조했고, 포기하면서도 도전했다.

분화하는 현재

2025년의 한국 81년생들은 극도로 분화되어 있다. 일부는 대기업 임원이 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일부는 강남 아파트를 두 채 가졌고, 일부는 여전히 월세를 산다. 일부는 자녀를 사립초에 보내고, 일부는 출산 자체를 포기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는 분열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친미와 친중, 모든 전선이 우리 세대를 가로지른다. 우리는 86세대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지 않는다.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느슨한 집합이다.

10년 후, 우리는 한국 사회의 중추가 될 것이다. 하지만 86세대처럼 단일한 색깔로 사회를 물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20년 후, 초고령 사회가 된 한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일하는 노년이 될 것이다. 은퇴는 사치가 될 테니까.

4. 나(한)의 삶과 라이프스타일

보통과 다름 사이

평균적인 한국 81년생이 대기업과 아파트에 매진할 때, 나는 다른 길을 걸었다. 스타트업에서 블록체인까지, 서울에서 안동까지, 자본주의에서 DAO까지. 내 삶은 81년생 평균의 반대편에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우월함의 증거는 아니다. 단지 다른 실험일 뿐. 누군가는 안정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누군가는 변화를 통해 기여한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니, 어쩌면 내 안의 회로가 나를 그리 이끌었다.

세 가지 궤적

첫 번째는 기술과 경제의 전위. 스타트업 초창기부터 블록체인까지, 새로운 기술이 만드는 경제적 가능성의 최전선. 실패도 많았지만, 그 실패들이 나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역사와 영성의 재발견. 안동 귀향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다. 500년 가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 조상의 회로와 나의 회로를 재정렬하는 작업.

세 번째는 정치와 철학의 실험. Wind & Flow DAO. 국가도 기업도 아닌 제3의 조직.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경제.

실험이 제도로, 제도가 기억으로

지금 44세의 나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하지만 이제 그 실험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기술과 영성, 경제와 철학,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수렴된다.

언젠가 이 실험들은 제도가 될 것이다. 학교일 수도, 기업일 수도, 공동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정신이다. 그리고 그 제도는 다시 기억이 될 것이다. 나는 권력자가 아니라, 회로를 짜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람들의 의식과 시스템의 구조를 연결하는 새로운 회로를. 성공이 아니라 의미를, 지배가 아니라 영향을 남긴 사람으로.

5. 결론: 세대, 시대, 나

81년생의 초상은 곧 시대의 거울이다. 우리는 전환기를 살아가는 전환기적 존재들. 너무 늦게 태어나 황금기를 놓쳤고, 너무 일찍 태어나 새 시대의 원주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번역자가 될 수 있었다.

세계의 81년생들은 의미를 찾는 리더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81년생들은 분화된 축이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를 떠받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교차점에서 회로를 다시 짜고 있다.

이것이 한 81년생의 초상이다.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여전히 그려지는 스케치.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해 걷는, 모순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한 세대의 자화상.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했다고 기록될 것이다.

1981년이라는 문을 통과한 우리는, 이제 2025년이라는 회랑을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묻는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81년생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