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in read

하필이면 하회

하회는 단지 유교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다. 강이 돌아 흐르고, 조상의 위패가 옮겨지지 않고, 그 제사 속에 반복되는 기억이 묻혀 있는 이 장소는 단지 ‘보존된’ 곳이 아니라 “되돌아온다”고 약속된 곳, Providence, 필연의 자리다.
하필이면 하회

하회는 단지 유교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강이 감돌고 바람이 머물며 시간이 원을 그리는 공간, 과거와 현재의 파동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싱크로니시티의 영점이다.

하필이면 이곳이 그냥 한옥 몇 채 남은 민속촌으로 머물지 않은 이유는, 지금 우리가 묻고 있는 윤리의 질문이 이미 이곳에 오래도록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강이 돌아 흐르고, 조상의 위패가 옮겨지지 않고, 그 제사 속에 반복되는 기억이 묻혀 있는 이 장소는 단지 ‘보존된’ 곳이 아니라 “되돌아온다”고 약속된 곳, Providence, 필연의 자리다.

하회는 지금, 기억이 돌아오는 소용돌이이자, 윤리가 다시 시작되는 가장 조용한 진원지다.

주)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는 심리학자 칼 융(Carl G. Jung)이 제안한 개념으로, 겉보기에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우연처럼 보이지만 어떤 내적 의미나 상징적 연결을 통해 ‘만나야 할 것들이 정확히 만나는 순간’, ‘뜻밖의 일치가 운명처럼 다가오는 순간’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 말하는 “하필이면 지금, 하필이면 하회”란 표현은 바로 그런 싱크로니시티의 감각을 가리킨다—역사의 고통, 조상의 기억, 오늘의 윤리가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겹쳐지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