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기사 번역] 한은 금지된 울음소리
이 글은 2025년 12월 26일, 대만의 유력 주간지 '미러 미디어(Mirror Media, 鏡週刊)'에 실린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미러 미디어는 날카로운 탐사 보도로 유명한 대만의 대표적인 언론사다.
저자인 쉬슈칭(徐淑卿)은 전(前) 중국시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현재 미러 미디어의 문학·IP 플랫폼인 '미러 문학(Mirror Literature)'의 총주필을 맡고 있는 베테랑 문화 전문 기자다.
대만 지식인의 시선에서 한국의 영화 <파묘>와 <1987>, 그리고 무속 신앙을 통해 한국인 고유의 정서인 '한(恨)'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흥미로운 글이다. 외부자의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적 상처와 치유 과정을 놀랍도록 예리하고 따뜻하게 통찰하고 있어, 번역하여 소개한다.
원문:徐淑卿專欄:恨是被禁止的哭聲 (Mirror Media)
저자: 쉬슈칭 (徐淑卿)
1987년 1월, 전두환 독재 정권에 항의해 투쟁에 참여했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구금 중 고문으로 사망했다. 진상이 밝혀진 뒤 한국에서는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6월에는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뒤통수를 맞아 한 달 뒤 사망했다.
이 역사는 2017년 영화 《1987: 그날이 오다》로 만들어졌고, 사건 발생으로부터 30년이 지난 뒤에야 도착한 애도라 할 수 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을 거친 후의 늦은 추모였던 셈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났던 1987년 당시에도 분노와 애도는 이미 한국의 민속적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6월, 서울대학교에서 샤머니즘 의식을 연구하던 무용가 이애주는 재생과 해방을 상징하는 춤을 통해 고문 끝에 숨진 학생 박종철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다. 이어 7월 9일에는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다시 한풀이춤을 추며, 망자의 ‘한’을 위로했다.
만약 흰색이 한민족의 영혼을 상징하는 색이라면, ‘한’은 한국인의 영혼을 이루는 감정이며 한국 문학과 영화, 예술 창작의 공통된 샘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한자 ‘恨’에서 왔지만 중국어나 일본어의 ‘한’과는 의미가 다르다.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의미를 지니고, 외부를 향한 분노라기보다 마음속에 서서히 축적되는 감정에 가깝다. 한국인의 혈맥에 흐르지만 다른 언어로는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다.
넷플릭스 《세계의 길거리 음식》 서울 편에서 광장시장 상인은 영상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기 감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속에 숨겨서 내면의 일부로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한’입니다.”
2020년 『가디언』에는 〈‘타오르는 분노를 가리는 차가움’: 한국 여성 작가들의 부상(A coldness that masks a burning rage': South Korea's female writers rise up)〉이라는 글이 실렸다. 필자 미리엄 발라네스쿠는 『만약 우리가 당신의 얼굴을 가졌다면』의 작가 차희원을 인터뷰하며 ‘한’에 대해 언급한다.
그녀는 이를 “장기간의 불공정한 대우 속에서 축적된 원망과 분노”라고 설명한다. “내 삶의 많은 여성들이 이런 감정을 안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세대는 한을 품고 있는데, 그들 역시 며느리 시절 시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매우 악순환적인 고리를 형성해 왔습니다.”
한국표준국어대사전은 ‘한’을 “몹시 원망스럽거나 억울하고, 미련과 슬픔이 맺힌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정의만으로는 ‘한’의 다양한 함의를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
박찬욱의 복수 삼부작,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국 소설 역시 해외 독자가 늘었고, 더 많은 이들이 ‘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작품을 해석하는 입구이자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BTS 같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K팝 그룹에도 ‘한’의 요소가 있다고들 말한다.
201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자 신동철은 한국학회에서 ‘한의 간략한 역사(Brief History of Han)’라는 강연을 했다. 그는 ‘한’을 가장 한국적인 슬픔의 감정으로 보았으며, 단일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는 셰프 앤서니 보든의 해석을 인용해, 한을 인내와 갈망, 우울과 후회, 쓴맛,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결국 복수가 실현되기를 버티는 냉혹한 결단이 결합된 감정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한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귀신처럼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는 성질, 둘째는 모든 한국인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성, 셋째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유전적 성격이다.
한은 한국 고전문학에서 기원했으며, 과거에는 개인의 내면에 장기간 축적되는 감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 지배 이후 한은 억압받는 민족 집단의 고통이라는 현대적 변이를 띠며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신동철은 일본 통치기 ‘한’의 중요한 역사적 좌표 중 하나로 1926년 조선 왕조의 마지막 군주 순종의 서거를 든다.
그해 6월 10일 『동아일보』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장례 행렬이 금곡으로 향할 때,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의 지난날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고, 우리의 오랜 슬픔은 새로운 ‘한’을 불러낼 것이다. 순종이 저세상에서 처음으로 그들과 만날 때, 우리는 그 깊은 비애를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순종의 장례 행렬 영상을 보면, 훗날 제주 4·3이나 광주 사건 이후 나타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도와 금지된 울음의 원형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감시 아래 흰옷을 입은 한국인들이 침묵 속에서 마지막 군주를 배웅한다. 한국이 ‘백의민족’이라 불릴 만큼 예로부터 흰색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흰색은 정복당한 이들의 마음속 굴욕과 비통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일본 학자 도리야마 기이치는 『조선 백의고』에서 고려가 몽골에 침략당한 뒤 망국의 한으로 흰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애도의 의미를 결합해 신동철은 한을 “집단 정체성의 외상적 상실에서 비롯된 복합 감정”으로 재정의한다.
식민지의 한은 예술과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 《정년이》에 등장하는 판소리는 20세기에 들어 서사에서 더 비극적인 측면으로 중심이 이동하며, 이 시기에 진정한 ‘한’의 매개체가 되었고 ‘한의 소리’로 불리게 되었다.
민요 ‘아리랑’도 마찬가지다. 최소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노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 시련을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일본 식민 통치기에는 ‘한’의 정조로 전환되어 식민 지배에 맞서 결속을 다지는 초점이 되었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누적된 이 한은 과연 해소될 수 있을까.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분노와 원통함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한국의 한 문화에는 이를 푸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탈춤과 샤머니즘 의식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은 한국인의 한을 서구적 의미의 ‘원한’이 아니라, 슬픔을 씹어 삼키는 인내의 힘으로 보았다. 이 한은 판소리나 탈춤 같은 전통 예술을 통해 ‘흥’으로 전환되는 창조적 에너지를 지니며, ‘한’과 ‘신명’의 열광과 고양은 하나의 동전 양면이라고 말했다.
한국 무속을 연구한 사회인류학자 최길성은 샤먼 의식의 본질을 “한을 처리하는 기술”로 본다. 많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한국 샤머니즘의 핵심이 한을 품고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데 있다고 본다. 생전에 풀지 못한 뜻이나 억울함을 지닌 영혼은 떠나지 못해 질병이나 재앙으로 산 자를 괴롭힌다.
무당은 중재자로서 춤과 노래, 죽은 이의 말투를 흉내 내어 피해자나 유가족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말로 풀어내게 한다. 이는 종교 의식이자 집단 심리 치료로서 한풀이의 효과를 낸다. 학자 김열규는 1970년대 초 무속 의식에서 관객 역시 영적 공연에 참여해 공유된 황홀경을 경험한다고 지적했다.
고전문학에서 시작해 식민의 고통, 남북 분단과 독재의 고통을 거치며 한은 점차 정치적 의미를 깊게 했다. 한풀이 기술로서의 샤먼 의식 또한 상징적 정치성을 띠게 되었다.
학자 남혜림은 〈슬픔과 희망 사이: 한국 ‘한’의 담론〉에서 이애주가 이한열을 위해 선보인 한풀이춤을, 노래와 춤으로 영계와 소통하는 샤먼의 종교 의식으로 본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상징적 민속 의식을 시위 운동에 도입하려는 흐름을 구체화한 사례다.
한풀이 과정에서 무당이 과거의 가해자를 꾸짖을 수는 있지만, 복수로 나아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당은 복수자가 아니라 위로자의 역할을 맡는다.
역사학자 김성식은 1984년 『동아일보』 칼럼에서 샤먼 의식을 비유로 들어 정치의 역할을 설명했다. 억울하게 죽은 이를 위한 한풀이 의식이 망자의 한을 덜어주듯, 정치는 산 자의 한이라는 감정적 짐을 덜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항상 그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샤먼 의식과 탈춤 같은 종교와 전통 예술뿐 아니라 문학과 영화도 미완의 집단 애도 의식이 된다. 국가 폭력을 반복해 서술함으로써 망자의 한과 생존자의 상처를 말한다.
한국의 지속적이고 풍부한 영상 애도에 비해, 대만 역시 백색 테러와 이후 정치적 박해의 상처를 다양한 각도에서 정리하려 시도해 왔다. 생존자의 침묵을 다룬 《초급대국민》, 말할 수 없는 공포를 타자의 형상으로 드러낸 《반교》, 여성 시선으로 백색 테러를 마주한 《유마구 15호》, 국가가 가해자를 드러내지 못할 때 개인적 복수로 나아가며 가해자의 무반성을 독백처럼 드러낸 《여진》, 그리고 올해 세대를 넘어 눈물을 흐르게 한 《대몽》까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말해졌다고 해서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는 여전히 일본 식민기 협력자들의 잔존한 한을 다룬다. 《곡성》과 《파묘》는 일본과 샤먼이라는 두 요소를 공유하며, 일본 협력자도 등장한다. 전자에서는 한국 무당이 일본 주술사를 도와 동족을 해치고, 후자에서는 일본과 협력자가 낳은 악령의 재가해를 차단한다. 이는 일본에 대해 아직 풀리지 않은 한국의 한이라 할 수 있다.
이 잔존한 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한풀이 의식은 반복될 것이다. 서사와 영상의 제의를 거듭해야만, 《파묘》에서 땅의 맥과 한국인의 마음에 박힌 쇠말뚝이 서서히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Member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