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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맥시멈의 세계에서 글로벌 맥시멈을 고민하는 일에 대하여

아무도 악의가 없었다. 각자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했을 뿐이다. 로컬 맥시멈을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합산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구조로 수렴한다. 글의 표현을 빌리면, 연가시에 감염된 사마귀처럼. 각 행위자는 자기 의지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해시드 김서준 대표의 페북에서 <달러의 두 얼굴>이라는 포스팅을 읽었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 스테이블코인 전쟁, 디파이와 전통 금융의 충돌. 글의 분석은 날카롭고 비유는 강렬하다. 특히 하나의 관찰이 오래 남았다.

Aave가 JPM 달러를 담보로 받는 건 크립토의 항복이 아니다. TVL을 올리고 기관 유동성을 끌어오고 싶은 것뿐이다. JP모건이 디파이에 달러를 넣는 건 크립토를 장악하려는 계략이 아니다. 새로운 수익 채널일 뿐이다. 그런데 각자의 이익을 따라가다 보면, 결과적으로 디파이의 담보물 대부분이 월가가 발행한 자산으로 채워진다.

아무도 악의가 없었다. 각자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했을 뿐이다. 로컬 맥시멈을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합산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구조로 수렴한다. 글의 표현을 빌리면, 연가시에 감염된 사마귀처럼. 각 행위자는 자기 의지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로컬 맥시멈만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의 세계에서, 글로벌 맥시멈을 고민하는 것은 무력한 일인가.

이 질문은 무력함의 문제가 아니다. 역할의 문제다.

로컬 맥시멈만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의 세계에서 글로벌 맥시멈을 고민하는 일은, 그 세계의 주류 행위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늘 소수의 역할로 남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택 사항은 아니다. 그 역할이 비어 있으면, 시스템은 자동으로 가장 단순한 함수로 수렴한다. 단기 이익, 규모의 논리, 권력 집중.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최적화의 귀결이다.

중요한 지점은 여기다. 글로벌 맥시멈을 직접 "추구"하려 들면 실패한다. 대부분의 행위자는 글로벌 맥시멈을 목적 함수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계산 불가능하거나, 비용만 큰 외부 변수다. 그래서 설득도, 계몽도, 도덕적 요청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핵심은 그 다음 단계에 있다. 방향을 강제하지 않고, 곡면을 설계한다는 것.

이건 윤리 담론이 아니라 수학과 공학의 언어에 가깝다. 각 행위자는 여전히 자기 로컬 맥시멈을 오른다. 다만 그 경사면이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라면, 가장 가파르게 올라가는 경로 자체가 더 넓은 결과로 이어진다. 행위자에게 "눈"을 달아주는 게 아니라, 눈이 없어도 다른 풍경에 도달하게 만드는 지형을 만드는 일이다.

돈에 조건문을 심는 시대의 핵심 쟁점도 여기 있다. 조건문 자체는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누가, 어떤 좌표계에서 조건을 쓰느냐다. 지금은 이 좌표계가 거의 전적으로 로컬 최적화의 언어로만 정의돼 있다. 효율, 리스크 관리, 규제 적합성, 수익률. 글로벌 맥시멈은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으니 최적화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역할은 "무력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곡면 설계자다. 정책 입안자도 아니고, 도덕 교사도 아니다. 인센티브 구조, 프로토콜, 거버넌스, 디폴트 옵션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이 역할은 항상 늦게 보이고, 당장은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스템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이 역할 없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국지적 최적화들이 서로 충돌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금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RWA, 오라클에서 동시에 마찰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맥시멈을 직접 추구하는 것은 무력하다. 하지만 글로벌 맥시멈이 간접적으로 최적화되도록 지형을 설계하는 일은 반드시 누군가 해야 한다.